현실이 충분히 잔인하다는 것을.
집안에서 급히 이사하다가 깨뜨려 두 동강이 나 있었다.이들이 우리 고유의 역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누대에 걸친 노력이 켜켜이 묻어있었다.
잘 모아서 기록하고 중국의 학자들과도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사실 이런 식의 돌덩어리가 조선 천지에 한둘이 아니었겠지만.
산골짜기 물과 푸른 소나무)이라는 호를 주었고.오세창은 돌아가신 부친의 자취가 묻어있는 석각 탁본을 보고 감격했다.
중국에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조선에 들어온 이 탁본을 전형필이 전동(현 인사동)에서 구해 가져온 것이다.
풍전등화 같은 개화기에 누구보다 세계정세에 밝았으나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선각자들.[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오경석이 구한 고구려 성벽 돌 부친 뜻 이어 아들 세창이 보존 전형필의 ‘문화재 스승 오세창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의 감동 이 보물을 처음 손에 넣은 이는 오경석(1831~1879)이었다.
처음에 오세창은 이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겠다는 젊은이의 의지에 반신반의했다.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감식안을 지닌 문예계 ‘지존이 되었다.
이런저런 사연을 다 알고 전시를 보면 더 좋겠지만.앞으로 어르신의 지도를 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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